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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피니언칼럼 제7차 사법파동, 대법원장의 손에서 시작되나…

[AI 칼럼] 제7차 사법파동, 대법원장의 손에서 시작되나…

본 칼럼은 9월 29일 작성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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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조용하다고 해서 사법 독립이 실현된 것은 아니다. 권력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서 헌법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사법 독립은 오히려 권한의 경계가 충돌하는 순간 시험된다. 정치권력의 결정이 사법부 구성에 관한 권한과 맞물릴 때, 사법부가 자신의 헌법상 역할을 외부의 지시 없이 수행할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지금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논란이 그렇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임명 제청했다. 청와대는 열흘 뒤인 8월 28일, 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다른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은 9월 22일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고, 다음 날에도 같은 입장을 거듭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자신의 8월 28일 조치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끝내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 기존 제청을 반려한 것인지, 대통령이 임명 자체를 거부한 것인지, 제청은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는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 모호함은 사소하지 않다. 만약 재제청 요구가 대법원장을 구속하지 않는 비공식적 권고에 불과했다면, 거부에 특별한 헌법적 근거가 필요하지 않다는 반론도 성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재제청 거부를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라 규정하며 유감을 표했다. 자신의 조치는 모호하게 남겨두면서 상대의 대응에는 헌법적 무게를 요구하는 이 비대칭이, 사안을 단순한 인사 이견 이상으로 키운 한 원인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사법부와 정치권력이 정면으로 부딪힌 사건에는 ‘사법파동’이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붙어 왔다.

1차 사법파동은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3선개헌을 거쳐 그해 대선에서 세 번째 임기를 확보한 직후 일어났다. 당시 대법원이 국가배상법의 이중배상 금지 조항
에 위헌 결정을 내리고 시국사건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하거나 무죄에 가까운 판결을 내놓으면서 정권과 마찰을 빚던 상황이었다. 그해 7월 28일 검찰은 반공법 위반 항소심에서 변호인으로부터 향응을 받았다는 혐의로 서울형사지방법원 이범렬 부장판사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영장을 두 차례 기각하고 담당 판사가 사표를 내는 사태로 번지자,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을 포함해 전국 지방판사 153명이 집단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정권의 사법부 탄압이라는 여론이 확산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법무부장관에게 수사 중지를 지시했고, 민복기 대법원장이 법관 처우 개선을 약속하며 사태는 수습됐다.

2차 사법파동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 직후 벌어졌다. 직선제 개헌으로 민주화가 이뤄졌음에도 정부가 5공화국에서 중용된 김용철 대법원장을 그대로 재임명하려 하자, 소장판사 335명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을 내고 대법원장 사퇴와 정보기관원의 법원 상주 중단, 법관의 청와대 파견근무 폐지 등을 요구했다. 결국 김용철 대법원장이 물러났다. 정부가 후임으로 내정한 정기승 대법관에 대해서는 국회가 과반수 기권표를 던져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고, 유신 체제에서도 소신을 지켰던 이일규 전 대법원판사가 새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이때 모인 소장판사들이 훗날 창립한 것이 ‘우리법연구회’다.

3차 사법파동은 1993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 직후 일어났다. 그해 5월 대법원이 내놓은 사법부 개혁 방안이 소장판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서울민사지법 소장판사 40명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제출했다. 이들은 정치권력에 협력해온 사법부 스스로의 반성과 법관 신분 보장 등 독립성 확보 방안을 요구했다. 사태는 김덕주 대법원장이퇴진하면서 진정됐다. 4차 사법파동은 2003년에 일어났고, ‘대법관 임명 제청 파동’이라고도 불린다. 서울지법 박시환 판사가 ‘대법관 제청에 관한 소장법관들의 의견’을 제출하며 항의에 나섰고, 판사 160여 명이 기수 서열에 따라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대법관 제청에 반대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법원장급 남성 법관만 대법관이 되어온 인선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 갈등을 계기로 열린 전국법관회의 이후 전효숙 부장판사가 첫 여성 헌법재판관, 김영란 부장판사가 첫 여성 대법관이 되는 등 대법관 인선 관행이 크게 바뀌었다.

5차 사법파동은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촉발됐다. 그가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현행법대로 신속하게 처리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담당 판사들에게 보낸 사실이 알려지자, 대법원은 진상조사단을 꾸렸고 신 대법관은 사상 최초로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윤리위가 재판권 침해 소지를 인정하고 경고를 권고했음에도 처분이 가볍다는 반발이 이어져 전국 지방법원에서 단독판사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이 사태를 2~4차 사법파동의 주역이던 박시환 대법관이 직접 ‘5차 사법파동’으로 규정하면서 명칭이 굳어졌다.

6차로 불리기도 하는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기(2011~2017) 말에 불거진 사법행정권남용,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다. 대법원의 숙원이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의 협조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강제징용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재판에 개입하고, 파견 법관을 동원해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수집했으며,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 등 모두 47개 혐의가 적용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9년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2026년 1월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 독립은 양보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라며 1심을 깨고 징역 6개월에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다만 이 사건은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대체로 ‘사법농단’으로 불릴 뿐, ‘제6차 사법파동’이라는 이름은 일부에서만 쓰여 아직 정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앞선 여섯 차례는 성격이 같았다. 정치권력이나 대법원 내부 지도부에 맞서 소장판사들이 집단으로 움직인 항명이었다. 이번 사태는 다르다. 판사들의 집단행동이 아니라 대법원장이라는 기관장 한 사람이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는 구도다. 그런 점에서 이 갈등을 곧바로 ‘제7차 사법파동’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방송사 YTN은 1987년개정된 현행 헌법 체제에서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짚었다. 그런데 9월 2일 사법연수원 14기 출신 법조인 84명이 ‘헌법의 경계를 넘지 말라’는 성명을 내고, 대법관 인사권을 세 기관에 나눈 것이 권력분립의 핵심 장치라며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 중단을 촉구했다. 법조계 특정 기수가 집단성명을 내는 방식은 과거 사법파동의 전형적 패턴과 닮아 있다. 이 갈등이 대법원장 대 대통령의 일회성 충돌로 끝날지, 법조계 전반의 집단 대응으로 번져 이름 그대로 ‘제7차’가 될지는 앞으로의 전개에 달려 있다.정치권은 이 사건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충돌로 부른다. 어느 쪽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거부한 사법부의 항명이라 하고, 다른 쪽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하려는 행정부의 개입이라 한다. 그러나 인물의 편을 고르는 것만으로는 이 사건의 헌법적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먼저 헌법이 나누어 놓은 권한을 살펴보아야 한다. 권한의 분리가 사법 독립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다. 문장은 짧지만 구조는 분명하다. 대법원장은 제청한다. 국회는 동의한다. 대통령은 임명한다. 이 세 행위를 하나의 권한으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이 문언 자체가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결론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반론은 타당하다. 세 주체가 서로 다른 행위를 한다는 사실은 각 권한의 범위나 종국성까지 말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근거가 되는 것은 조문의 문리해석이 아니라 실제
헌정 관행이다. 2011년에도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사전 대면 협의 없이 서면으로 대법관 후보를 제청했고, 당시엔 별다른 이의 없이 국회 동의를 거쳐 정상적으로 임명됐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 자체를 반려하거나 재제청을 요구한 사례는, 확인되는 한 이승만 정부 시기 이후 처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절차 형식에 대한 이의는 전례가 있어도, 제청권 행사 자체를 되돌려보낸 전례는 건국 이후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헌법과 법원조직법 어디에도 대통령에게 후보 반려권이나 재제청 요구권을 명시한 조항이 없다는 지적까지 고려하면, 이번 조치는 문언의 침묵을 상대측에 유리하게 해석해야 할 만큼이례적인 전례 단절이다.

대통령에게 대법관 임명권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대신한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있다고 해서 대통령이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헌법은 한 기관에 모든 결정을 맡기지 않고, 서로 다른 기관의 관여를 통해 대법관 임명 절차를 구성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질문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다.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을 수 있는가.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 자체를 효력 없는 것으로 되돌려보낼 수 있는가. 그리고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다시 제청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세 질문은 연결돼 있지만 같지 않다. 앞서 본 대로 청와대조차 자신의 조치가 이 셋 중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구분이 추상적 법리 놀음이 아니라 사건의 실제 성격을 좌우하는 쟁점임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임명권에 어느 정도의 판단 재량이 포함되는지는 헌법 제104조의 문언만으로 결론이 정해진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한 헌법학자는 대통령의 결정이 국회의 동의에 앞서 이뤄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았다. 반면 다른 헌법학자는 대통령의 거부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하면 사법권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설령 대통령에게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을 판단 재량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곧바로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명령하거나 요구할 헌법상 권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명하지 않는 행위는 대통령 자신의 최종 임명행위에 관한 문제이고, 재제청을 요구하는 행위는 대법원장의 제청 판단에 다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다. 전자의 인정 여부와 후자의 인정 여부 사이에는 별도의 논증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실제로 내세운 거부 근거가 이 104조 권한분리론과는 다른 층위에 있다는 점이다. 그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써 이뤄져야 한다는 헌법 제82조를 원용해, 재제청 요청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담기지 않았다는 점을 거부 사유로 들었다. 이는 재제청 요구권의 존부 자체를 다투기보다, 설령 그런 권한이 있다 해도 이번 요청이 문서상 최소한의 근거 제시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절차적·형식적 주장에 가깝다. 청와대는 그간 대법원장·대법관 임명 절차에서도 국무총리 부서만으로 문제없이 진행돼 왔다는 점을 들어,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가 없어 무효라는 논리라면 대법원장 자신의 임명 효력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고 맞 받았다. 이 공방은 104조 차원의 권한 배분 논쟁과 별개로 진행되고 있으며, 82조 논쟁에서 누가 이기든 104조 차원의 재제청 요구권 존부는 여전히 남는 질문이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후자, 더 근본적인 권한 배분의 문제다.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가진다는 것은 대법관 후보자를 심사하고 제청하는 단계에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도록 헌법이 역할을 부여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권한이 대통령의 의사에 종속된다면 제청은 독자적인 헌법상 행위라기보다 대통령의 선택을 전달하는 절차에 가까워진다.

이는 103조가 개별 재판의 독립을 규정한 조항일 뿐 제청 절차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반론에 부딪힐 수 있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재판의 독립은 판사 개인의 양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가 대법관이 되는지를 정하는 인선 절차 자체가 외부 권력에 종속된다면, 그렇게 구성된 대법관이 이후 내리는 개별 판단의 독립성도 구조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103조가 지키려는 가치는 104조가 설계한 절차가 실제로 지켜질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이 점에서 제청권은 사법 독립이 인사 단계에서도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제도적 장치다.

물론 제청권은 특권이 아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은 추천위원회가 대법원장의 자문에 응해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정하고 있다. 대법원장에게도 책임이 있다. 후보자 선정의 근거를 설명해야 하고, 대법관 공백이 국민에게 미칠 부담을 줄여야 하며, 자신의 결정이 개인적 정치행위로 오해받지 않도록 사법부 내부의 절차와 소통을 충실히 해야 한다. 청와대가 제기한 절차적 문제도 구체적으로 짚을 필요가 있다. 법원행정처가 후보자들에게 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던 사실이, 청와대에는 인선 절차의 공정성과 신뢰를 흔든 근거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이 실제로 제청을 무효화할 만한 흠결인지, 대법원 내부의 정상적 검토 과정인지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그러나 절차를 지적하는 것과 재제청을 명령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청와대가 재제청을 요구했다면 그 근거와 구체적 사유를 제시해야 하고, 대법원장이 거부했다면 그 역시 법적 근거와 절차적 이유를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헌법기관 사이의 충돌일수록 주장의 강도보다 근거의 명확성이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가인 김병로를 예로 들 필요가 있다. 오늘의 대법원이 행정부에 종속돼 있다고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김병로를 호출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출범할 때부터 사법기관의 독립성과 독자적 기능이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됐다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대법원은 김병로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고, 광복 후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사법부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소개한다.

그러므로 김병로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정당화하는 이름이 아니다. 김병로가 오늘 우리에게남긴 것은 대법원장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가 아니라, 독립을 주장하는 자리일수록 그 독립을 스스로 정당화할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대통령의 임명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는 정당하다. 대통령은 단순한 서명자가 아니며,
제청된 후보자에 대해 헌법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판단권을 인정하는 것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대통령의 지시에 종속시키는 것은 다르다.
대법원장이 지나치게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는 비판도 검토해야 한다. 대법원장이 대법관회의 등 내부의 공식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다. [19]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재제청 거부의 원칙적 취지와 별도로 권한 행사의 과정은 비판받을 수 있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공정성의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애초 손봉기 후보자에 대한 원제청 자체도, 청와대로부터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 서면 제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장의 원제청과 이번 재제청 거부는, 형식만 보면 둘 다 문서를 통한 단독적 의사결정이라는 같은 스타일을 공유한다. 이것이 원칙에 따른 일관된 태도인지 소통 방식의 반복된 한계인지는 이 사건 밖에서도 곱씹어볼 문제다. 다만 절차적 엄격성을 상대에게 요구하려면 같은 잣대를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법관 공백의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해법은 제청권을 포기하는 데 있지 않다. 양 기관의 공개 협의가 우선이지만, 협의로 해소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절차도 이미 작동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로 넘기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한 조치가 국회의 임명동의권과 의원 개개인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청구 취지는 대통령-국회 구도여서 이 글이 다루는 대통령-대법원장 쟁점과 다르지만, 이번 사태의 규범적 정리는 결국 정치적 협의보다 이런 공식 절차를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조희대라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도, 대통령의 정치적 승패도 아니다. 독립된 헌법기관은 자신의 권한을 어디까지 스스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가. 대통령이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학계의 답이 아직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두 견해를 대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헌법이 대법관 구성을 대법원장의 제청에서 출발하도록 설계한 이상, 그 제청을 되돌리거나 다른 후보로 바꾸라고 요구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 그 근거를 입증할 책임을 진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헌법과 법원조직법 어디에도 그런 권한을 명시한 조항이 없고, 건국 이후 실제로 행사된 전례도 없다.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않았더라도, 지금 시점에서는 제청권 쪽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법 독립은 평온할 때 증명되지 않는다. 권력과 충돌하는 순간, 사법부가 자신의 헌법적 권한을 스스로 행사할 때 비로소 시험대에 오른다. 다만 그 파동은 한 사람의 체면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대법원장의 손은 권력을 과시하는 손이 아니라 사법 독립의 경계를 행사하는 손이어야 한다. 이유를 설명하고 절차를 지키며 국민에게 책임지는 손이어야 한다. 이 갈등이 훗날 ‘제7차 사법파동’으로 기록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름이 무엇이 되든, 이번 사태는 대법원장의 손에서 시작됐다. 이제 그 손이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인물의 승리가 아니라, 사법 독립을 가능하게 하는 제청권이라는 헌법의 자리다.

제작 정보
기획 — 문정호 청년공감 편집장
구성 — 챗GPT (GPT-5.6 Luna)
초고 작성 — Manus (Manus 1.6 Lite)
탈고 작성 — Claude (Claude Sonnet 5)
검수 — 문정호 청년공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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