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젠더 갈등을 둘러싼 싸움에서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가 가장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건 아닐 텐데, 왜 우리는 그 목소리에 맞춰 눈치를 보고 있을까. 이 기사는 그 물음을 미디어 구조의 문제로 되짚는다.
이 기사가 쓰인 이후로도 젠더 갈등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혐오가 혐오를 낳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양극단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더 조용해졌다.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는 구조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점점 발언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기사가 제기한 문제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도, 그리고 더 단단한 답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기사의 가장 큰 강점은 책임의 층위를 나눠 논했다는 점이다. 제도 언론에게는 자극적인 썸네일과 무편집 영상 대신 맥락을 갖춘 보도를, 플랫폼에게는 혐오 콘텐츠를 방치하는 알고리즘 대신 건전한 토론의 장을 마련할 것을, 그리고 개인 미디어 사용자에게는 콘텐츠를 맥락 없이 소비하고 확산시키는 대신 비판적으로 읽어낼 것을 각각 요구한다. 단순히 언론만 탓하거나 개인만 탓하는 대신, 각 주체가 젠더 갈등의 심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구분해 짚은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문제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다만 기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언들은 아쉽게도 선언적 수준에 머문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 “디지털 문해력 교육이 강제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은 방향성 자체는 옳지만, 구체적인 실행 주체와 방법론 없이는 당위론의 반복이 되기 쉽다. 예컨대 그 주체는 국가인가, 플랫폼인가, 학교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순간 기사의 설득력은 한층 깊어졌을 것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사례의 구체성이다.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논쟁은 맥락 설명 없이 등장하고, 혐오 표현이 삽입된 썸네일이나 무편집 영상 사용 언론기관도 익명으로만 언급된다. 익명 보도가 2차 가해 우려를 방지하기 위한 관행임은 이해하지만, 특정 개인이 아닌 언론사의 보도 행태를 다루는 경우라면 그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예컨대 혐오 표현이 담긴 썸네일을 사용한 사례, 당사자 인터뷰 없이 한쪽 입장만 편집한 사례,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한 사례처럼 유형별로 분류해 제시했다면 독자의 이해를 돕고 논거를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사가 현상을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젠더 갈등을 균형 있게 보도하거나 건설적 담론을 형성한 사례를 함께 제시했다면 더욱 완결된 글이 됐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만큼,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것도 미디어 비평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기사가 가장 잘 포착한 건 젠더 갈등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소비되는 구조다. 그 구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편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피로해지고, 미디어는 그 피로를 덜어줄 생각 없이 계속 자극을 공급한다. 연결은 제목 안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다음엔 이 문제의식만큼 단단한 답도 함께 오길 바란다.
김세희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