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혈세로 어렵게 유지되는 서울시의 곳간은 결국 이렇게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해갔습니다. (중략) 시민의 혈세는 단 한 푼이라도 제대로 가치 있게 쓰여야 합니다. 민간보조 또는 민간위탁 사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이 아니라, 공익의 실현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민간기업과 시민단체도 시 예산으로 공무를 수행한다면 공공기관과 다름없는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0여 년간 시민사회 분야 민간보조와 민간위탁 사업을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뿌리박힌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고 모든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화하는 길을 가고자 합니다. 시민 혈세를 내 주머니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시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사익을 쫓는 행태를 청산할 것입니다.’
– 2021. 09. 13.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 바로 세우기 브리핑 중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민단체를 향해 꺼내든 칼이 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서울시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민단체 보조금의 정상화를 꺼내 들었다. 그는 시민단체를 행한 보조 및 지원이 불필요하고, 불투명하며, 불공정하게 집행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대대적 감사를 통해 잘못된 지원을 바로잡고, 시민의 혈세를 투명하고 제대로 사용하겠다 선언하였다.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사실상 박원순 시절의 시민단체 정책 및 정부 보조로 운용되고 있는 시민단체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시의 지원을 받고 운영되던 시민단체들이 반발할 것은 당연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 성향의 언론들이 일제히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을 팩트체크와 사설을 통해 비판했다. 여러 시민단체 측의 인사들이 라디오에 얼굴을 비추고, 오세훈 시장의 기자회견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오세훈 시장의 문제의식에 강하게 공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불공정한 예산 분배, 즉 특정한 성향의 시민단체에만 예산이 편중되는 문제만 강조되면서 이 논의가 소모적인 정치 논쟁으로 변하는 데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오세훈 시장이 지핀 이 불씨는 단순히 진보 성향의 시장이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보수 성향의 시장이 그걸 끊어버리려 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져서는 절대 안 된다. 시민단체에 가는 예산이 투명하게 전달되어 투명하게 사용되는가의 문제 정도로 파악하는 것도 부족하다. 우리는 그보다 좀 더 크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원래 민간에 대한 보조금은 민간의 자율적인 활동이 공익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이를 장려하기 위해 지급되는 것이며, 민간위탁이란 원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이나, 민간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활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인정될 때에 한해 시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2021. 09. 13.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 바로 세우기 브리핑 중
도대체 왜, 공공이 시민의 혈세를 시민단체에 주어야 하는가?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애초부터, 공공이 시민단체를 지원한다는 행위 자체가 과연 정당한 일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술한 오세훈 시장의 브리핑 내용에서도 보듯이, 본래 민간 시민단체에 대한 보조금은 그것이 공공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때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조금을 받은 시민단체, 위탁사업을 하는 시민단체는 그 본래의 취지에 맞도록 공공의 기능을 이행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공공을 위한다는 명목의 범위에 대해서, 우리는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도대체 공공을 위한다는 것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우린 공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해야 한다. 공공이라는 단어는 좁게 해석하냐, 넓게 해석하냐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우선 공공을 넓은 의미로 해석하게 될 경우, ‘사회를 위한 일’ 전반을 뜻하게 된다. 따라서 시민단체를 ‘넓은 의미의 공공’에 근거하여 지원하게 된다면, 지원하지 못할 시민단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시민단체는 태생부터 공공성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배타적 이익을 지향하기보다 사회문제 해결 및 사회 변화에 관심이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을 위한다는 의도와 별개로, 그 행동이 실제 공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어렵다. 공공을 위해 좋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몇 개 생각해보자. 난민을 받아들이고 보호하자는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는 분명 공공에 기여하려는 선의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국가의 질서를 해치고 민족의 문화를 파괴하는 일로 비칠 수 있다. 경제정의를 이룩하겠다는 시민단체가 부동산 문제를 소유 제한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려고 할 때,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정의와 공공의 일이라고 생각할 테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에게, 그건 시장이 만들어 온 효용 전반을 파괴하겠다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이렇게 무엇이 공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국민마다 다른 상황에서, 우리는 국민적인 동의를 통해 공공의 일을 할 유일한 공식적 조직으로 국가를 골랐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적 선거를 통해 그 국가와 정부에게 공공의 일을 하기 위한 권력을 위탁하고, 그들에게 세금을 헌납한다. 그런데 지도자가 공공성을 지향한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단체들에 예산을 투입한다면, 그건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공공의 관점으로 난민을 반대하는 난민 반대자가 난민 보호 시민단체에 내 소중한 혈세가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걸 얼마나 어이없게 생각하겠는가? 민주주의적 원칙에 근거하여 세워진 권력이, 내가 동의하지도 않은 시민단체에 내 소중한 혈세를 꽂아주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세금은 엄연히 공공기관이 공무를 처리하기 위해 주어진 돈이지, 규정 불가능하고 애매모호한 공공성을 띤 모든 조직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공공을 좁게 해석한다면 어떨까? 공공은 좁게 해석했을 때, ‘공공기관의 공무’에 가까운 뜻이 된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공공의 관점으로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특정한 공무를 이행하는 데 시민단체가 이용 가치가 있으므로, 무언가를 위탁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경우엔 시민단체는 단순히 공무 과정에서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므로,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할 경우, 공공과 시민사회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본디 공공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공공이 권위적으로 할 수 없는 시민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너무 많은 일을 시민단체에 위탁하게 되었을 때, 시민단체의 독립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기존에 시민단체가 할 수 있던 고유의 기능은 사라지고, 점점 사실상의 공공기관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실제로 일을 해야 할 공공기관은 자신의 역할을 상실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시민단체는 시민사회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명분을 갖다 댈 수 없을 정도로 공공 기관화될 것이다. 그렇게 해도 되는 일이었다면, 애초부터 공공기관이 하는 것은 왜 불가능한가? 국민의 혈세를 받아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공공기관이 틈만 나면 시민단체에 일을 맡기려고 하는 것은 업무 태만이다. 원래부터 민간에 맡기는 것이 나은 일이었다면, 그냥 처음부터 국가가 손을 떼고 있었으면 되었을 것이다. 공공이 주도해야 하면서 민간에 맡겨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시민단체가 권력에 물들어 권력기관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일의 손해는 시민단체에 일을 맡겨서 얻는 효용보다 훨씬 막대하다.
이제 시민단체는 시민사회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결사체라는 본연의 역할에 맞게, 이제 정부와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발적 기부를 통해 단체를 운영하고, 자신들이 바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평화적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야말로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아니라, 시가 아니라, 시민사회야말로 시민단체가 있어야 할 본연의 장소다.
반대로, 공공은 자신이 할 일을 해야 한다. 시민단체를 끌어들여 문제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 애초에 공공이 할 일이 아니라면 개입하지 말고 민간에서 알아서 하도록 놔둬야 하고, 공공이 할 일이라면 자신들의 일을 떠넘기지 말고 끝까지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정말로 시민단체를 끌어들여야 하는 일이 있다면, 사업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시민단체와 협업해야 한다. 일단 시민단체에 전방위적으로 돈을 뿌리고 보는 지원사업이 아니라, 해야 할 사업이 명확히 설정되었을 때 이에 맞는 시민단체에 일을 위탁하는 식으로 업무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가 국민의 동의 없이 누군가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시민사회와 공공이 각자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끝내야 할 때가 왔다. 오세훈 시장의 이번 선전포고가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자세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