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벗어난 언어의 해방과 상상력
문학평론가 이경수는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 고도의 예술작품”이라 정의한 바 있다. 시의 언어는 일상 언어와 달리 모호성과 다의성을 특징으로 한다. 하나의 의미에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해석과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즉, 지시적 의미를 넘어 새로운 상상력과 감각을 창출하는 힘을 지닌다. 객관적이고 개념적인 언어와 달리 시적 언어는 함축적이며 운율과 이미지를 동반해 독자와 청자에게 독특한 미적 세계를 제공한다. 동일한 어휘라도 작품 안에서 나타나는 배열과 조직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이것이 바로 시적 언어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시적 언어는 우리가 소화하는 과정에서 고정된 사고를 일상의 틀에서 해방시키고, 사물과 현상을 새롭고 독창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섬세하고 함축적인 표현은 복합적 감정과 미묘한 차이,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 시청자와 독자는 더욱 깊은 공감을 경험한다. 대표적 예로 윤동주의 「서시」를 들 수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에서 “잎새”와 “바람”이라는 단어가 자연적 요소로 단순히 바라보기보다는, 시 전체의 정서를 압축하고 심화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처럼 시적 언어는 리듬, 이미지, 어조가 유기적으로 조직되며 일상의 언어와 차별화된다. 조사 하나, 단어 하나의 선택이 작품의 분위기와 의미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이유다.
오늘날 스토리텔링의 영역에서도 시적 언어는 여전히 핵심적인 힘을 발휘한다. 흔히 디지털스토리텔링이 머리를 움직인다면, 시적 언어가 스며든 스토리텔링은 감정을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이야기 전달 방식 속에서도, 시적 언어는 감정을 흔들고 몰입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드라마에서 언어는 인물의 발화를 통해 구현된다. 사건 전개와 서사 구조는 대부분 인물의 대사에 의해 진행되며, 발화가 곧 언어의 자격을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일반적인 대사보다 더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드라마는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데, 탄탄한 드라마일수록 주제는 특정 인물의 직접적인 진술만으로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여러 인물의 일상적이고 은유적인 언어가 조합되면서 드러난다.
이때 시적 언어는 드라마의 감정 이입과 공감을 극대화한다. 또한 주제와 메시지를 강화하고, 장면과 인물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며 일상성을 새롭게 재발견하도록 돕는다. 드라마는 행동을 언어와 이미지로 동시에 보여주는데, 이때 시적 대사나 장면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독백, 비유, 상징과 같은 표현을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와 내면이 깊이 전달되며, 주제는 직접적이지 않고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관객은 이를 각자의 경험과 감성에 비추어 해석하면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한다. 시적 언어는 흔한 설명이나 사실적 대사를 넘어, 인물과 공간, 사건을 이미지화해 시청각적 체험으로 확장한다. 상징적 단어의 반복, 시적인 독백은 분위기 전환과 인물 내면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드라마 속 시적 언어는 관객이 일상 속 사물과 관계, 정서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며, 현실 세계에 대한 깊은 공감과 성찰로 이어진다.
짧은 한 문장에 담긴 제주 바람의 기억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이러한 시적 언어의 힘을 언어와 장면의 결합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준다. 제주라는 공간적 배경, 인물들의 삶과 상처를 압축해내는 대사들은 서사를 넘어선 언어 미학을 구현한다. 10화 초반, “세상 제일 센 바람은 사람 가슴 한 뼘 안에서 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에는 장사 없었다.”라는 대사는 실제 바람이 아닌 내적 고통을 은유한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외부의 폭풍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휘몰아치는 감정과 상실임을 드러낸다. 이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길의 처지와 맞물리며, 그가 제주 바다의 거친 바람은 견뎌냈지만 결국 무너뜨린 것은 ‘내면의 바람’이었음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해당 대사는 자연과 인간 심리를 겹쳐 표현함으로써 상길의 삶을 비극적으로 요약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하여금 상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했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라는 대사는 부모와 자식 간의 엇갈린 마음을 압축한다. 부모는 다 주지 못한 미안함만을 품고, 자식은 다 받지 못한 서운함만을 기억한다는 관계의 평행선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이 대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금명과 부모의 갈등 장면은 세대 갈등을 보다 보편적인 가족 관계의 비극으로 확장한다. 이 시적 언어는 짧은 한 문장으로 세대 간 단절과 오해의 구조를 명징하게 드러내며, 관객에게 “우리 가족의 모습은 어떠한가”라는 자기 성찰을 촉발했다.
또한, “살면 살아져.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라는 대사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셋째 아들마저 떠나보내는 고통을 겪는 애순의 삶과 교차한다. 손톱이 자라는 것은 의식되지 않지만 분명 일어나듯, 고통 역시 서서히 희미해진다는 철학이 담담하게 제시된다. 평범한 일상을 은유로 활용한 이 표현은 관객에게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한다. 장면 속에서 이 대사는 위로 이상의 울림을 주며, 고통 속에서도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의지를 북돋운다.
가족의 연대를 드러내는 장면에서도 시적 언어는 빛을 발한다. “엄마를 찌르면 내 가슴에도 똑같은 가시가 와서 박혔다.”라는 대사는 직설적이면서도 시적인 방식으로 가족의 상처 공유를 묘사한다. 이는 금명이가 부모를 향한 원망과 동시에 그 고통을 고스란히 자신이 짊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을 압축한다. 관객은 이를 통해 가족이란 서로의 아픔을 나눌 수밖에 없는 관계임을 실감하고, 감정적 동일시에 빠져든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땐 연애편지 쓰듯 했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한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라는 대사는 인간 심리의 역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오히려 무심하거나 상처를 주는 현실을 ‘연애편지’와 ‘낙서장’이라는 대비적 이미지로 표현해 관객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장면 속에서 이 대사는 부모를 향한 애순의 내적 갈등을 선명히 드러내며,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원망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그들의 봄은… 꿈을 꾸는 계절이 아니라, 꿈을 꺾는 계절이었다. 그렇게도… 기꺼이.”라는 대사는 청춘을 ‘꿈의 계절’로 그리는 전형적 은유를 뒤집는다. 육지로 나갈 꿈을 포기한 관식, 어린 나이에 엄마의 삶을 시작한 애순의 모습과 맞물리며, 청춘이 희망이 아니라 희생의 계절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희생이 원망이 아니라 ‘기꺼이’ 선택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시적 언어는 체념 속에서도 의연함과 숭고함을 포착한다. 관객은 이 대사를 통해 ‘꿈을 꺾는 선택조차도 사랑과 책임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개천에서 진짜 용이 날려면, 개천은 죽어나야 되는 거니까.”라는 대사는 전통적 속담을 비틀어 부모 세대의 희생과 자식 세대의 성취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금명이가 부모의 고생 위에 자신의 성취가 세워졌음을 자각하는 순간, 이 대사는 냉혹한 현실과 동시에 부모의 헌신을 관객에게 절절히 각인시키며, 시적 언어가 짧은 속담 변주만으로 사회적 구조와 가족 관계의 본질을 한순간에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언어가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 <폭싹 속았수다>
이처럼 <폭싹 속았수다>의 대사와 내레이션은 사실적 전달을 넘어 은유와 상징, 반복과 역설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함축하고, 관객이 스스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이는 주제를 설명하기보다 여운과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관객의 내면에서 오랫동안 울림을 남긴다. 드라마가 서사의 틀을 넘어 언어 자체로 감동과 성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 바로 <폭싹 속았수다>였다. 나아가 이러한 언어의 힘은 단순히 인물의 감정을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관객이 자기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한다. 시적 대사는 화면 속 사건을 넘어 우리의 개인적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고, 고통과 치유, 가족과 청춘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이는 곧 드라마라는 매체가 지닌 공감과 위로의 힘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며, <폭싹 속았수다>는 그 힘을 언어로 구현해낸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이야기를 본다”는 경험을 “언어를 체험한다”는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언어가 그저 대사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시처럼 읽히고, 가슴속에 각인되는 순간, 드라마는 예술로 승화된다. <폭싹 속았수다>의 언어가 시적인 힘을 획득한 순간, 그것은 관객에게 드라마가 아닌 삶을 성찰하게 하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으며,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기억될 콘텐츠로 남게 될 것이다.
- 글 – 최지안, 조현채
- 자료조사 – 김효유
- 팩트체커 – 홍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