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9일
오피니언칼럼일은 나를 완성시키는가? “자아실현과 탈노동 사이의 청년”

일은 나를 완성시키는가? “자아실현과 탈노동 사이의 청년”

본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생성되었습니다. | 출처: DALL·E, ChatGPT-4o

“좋아하는 일을 하라.” 2000년대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된 커리어 조언일 것이다. 한때는 청춘의 특권처럼 들리던 이 말은 이제, 한숨 섞인 농담으로 변해버렸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좋아하는 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냉정한 조언과,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내면의 열망 사이에서 많은 청년들이 방황하고 있다. 유튜브와 SNS에는 ‘조기퇴사 후기’, ‘자발적 무직’ 콘텐츠가 넘쳐난다. “더 이상 회사에 내 인생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며 퇴사 후 여행, 자기계발,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공유하는 영상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반대편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좇다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의 고백이 이어진다. ‘일’은 여전히 우리 삶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그 의미와 무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신념과, 그 신념을 지탱하기엔 너무 벅찬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동시에,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생계가 안 되면 의미 없다”며 일과 감정을 철저히 분리하려는 시각 역시 확산되고 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이제 단지 유행어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청년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생존의 방식이다.

탈노동과 워라밸의 부상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함께 ‘워라밸’이 사회적 화두가 되었으며, 2020년대 들어 MZ세대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2025년 잡코리아가 20대~40대 직장인 1,2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대 공통으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가장 중요한 가치(50.3%)로 꼽았다. 특히 2030대의 절반 이상이 워라밸을 최우선 가치로 선택했다. 이 세대는 ‘회사에 다닌다’는 개념보다 ‘삶의 균형 속에서 일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직장인을 버티게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월급’(76.4%)을 꼽은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많은 청년 직장인들이 ‘일’을 생계 유지의 현실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히 돈만이 아니라, ‘좋은 동료나 상사’(59.7%), ‘공휴일’(37.1%), ‘업무에 대한 자부심’(22.2%) 등도 중요한 동기로 꼽혔다. 특히 20~30대는 ‘나와 맞는 가치관’과 ‘공정성’, ‘성장 가능성’ 등도 직장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높은 연봉이 보장되어도 부도덕한 관리자나 불공정한 운영 방식에는 취업을 포기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처럼 ‘회사=인생’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일과 삶의 균형, 개인의 성장, 조직 문화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청년 세대에게 일은 생계 유지의 수단이자, 동시에 워라밸과 자기 성장, 의미 추구의 장이 되고 있다.

새로운 일의 풍경: ‘조용한 퇴사’와 정체성의 재구성

최근 몇 년간 ‘조용한 퇴사’라는 용어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자연스럽게 회자되고 있다. 이는 직장을 공식적으로 그만두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면서 자기 삶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태도를 일컫는다. 이러한 흐름은 ‘자발적 무직’, ‘반노동 선언’과 같은 표현과 함께, 하루 8시간 노동이 당연시되던 사회에 “왜 꼭 그렇게 일해야 하죠?”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MZ세대 사이에서는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으니 나도 회사를 내 인생의 전부로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열정과 에너지를 조직에 바치는 대신, ‘내 삶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을 추구하는 전략적 거리두기를 선택한다. ‘일은 생계 유지의 수단’이라는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지 직장 내에서의 태도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퇴사 후 무직이 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브이로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찰스엔터’라는 유튜버는 퇴사 브이로그를 업로드하여 2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큰 인기를 갖기 시작했다. 이들은 더 이상 회사와 인생을 동일선상에 놓는 등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조직에 헌신하기보다는 자기계발, 취미, 여행 등 개인의 삶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적 거리두기와 최소한의 노동이 모두에게 해방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일이 없으면 자아가 붕 뜨는 느낌”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업이 곧 정체성의 일부였던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일과 나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일 외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정체성의 공백을 경험하기도 한다. 즉,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한편으로는 일의 의미와 자기 정체성의 연결고리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조용한 퇴사’와 관련된 가치관의 전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일과 정체성, 삶의 의미에 대한 세대적 재구성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일이 곧 나’라는 믿음에 대한 역사적·철학적 물음

오늘날 “나는 어떤 일을 하는가”가 곧 “나는 누구인가”로 연결되는 현상은, 사실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이라 정의하며, 그 행복은 각자가 가진 탁월성을 실현하는 활동을 통해 달성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자아실현의 중요한 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노동’은 주로 하층민이나 노예의 몫이었고, 자유시민은 정치·예술·철학 등 더 높은 차원의 활동에서 자기실현을 추구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노동의 의미는 급격히 변한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대 서구에서 직업이 ‘소명’으로 받아들여지며,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고 분석한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무엇을 하며 사는가”는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되었고, 노동은 신분이나 공동체 소속이 아닌 ‘개인’의 자기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심이 되었다.

현대의 자기실현 담론과 그 이면

20세기 후반 이후, 자기계발과 자기실현은 노동 담론의 중심 키워드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너 자신이 되어라” 같은 구호는 일과 정체성을 강하게 연결짓는다. 일은 곧 나의 가치, 나의 존재 이유가 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현대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이러한 자기실현 중심의 노동 담론을 비판한다. 우리는 더 이상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착취함을 밝힌다. 자기계발과 자기실현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상품처럼 단련하며,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이러한 자기착취 구조는 번아웃, 우울감, 정체성 혼란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일’에 자신을 몰입하다 소진을 경험하고, 그 결과 일과의 거리두기, ‘조용한 퇴사’, ‘자발적 무직’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청년 세대와 ‘일=나’의 재검토

최근 청년 세대는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으니, 나도 회사를 내 인생의 전부로 보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조직에 대한 헌신 대신 ‘내 삶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과 전략적 거리두기를 선택한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조용한 퇴사’, ‘자발적 무직’, ‘반노동 선언’ 같은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회자된다. 하루 8시간 노동이 당연하던 시대에서, “왜 꼭 그렇게 일해야 하죠?”라는 질문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해방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체성의 공백을 낳는다. 직업이 곧 자기소개서의 첫 문장이자, 사회적 지위의 증명서였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일 외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청년들 사이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일 없이도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관계, 취미, 몸, 공동체, 공부 등 다양한 영역에 주목한다.  전엔 일이 없으면 무기력해질 줄 알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더 잘 알게 되는 사례도 나타난다. 일이 없으니까 내가 보이더라”고도 말한다. 일에서 떨어져 나온 시간 속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 자신의 감정,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즉, 일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의 기둥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조각을 엮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일 자체보다, 일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에도 존재할 수 있는 자기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어야 하는가”, “나는 일 외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와 경험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일지 모른다. 이 질문들에는 정해진 답이 없지만, 바로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오늘날 새로운 ‘일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일은 더 이상 내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일이 곧 나’라는 단순한 등식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 속에서 나만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확장해가는 여정에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