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7일 확정·발표한 조직개편안은 단순한 행정 구조 조정 차원을 넘어 국가 권력의 중추를 직접 겨냥한 대대적 변화다. 기획재정부 분리와 검찰청 폐지를 중심으로 예산과 수사라는 핵심 권력을 재편하는 동시에 금융감독 체계, 에너지·환경 부처, 방송·통신 규제 구조 등의 행정 전반을 다루는 개편안이 망라됐다. 이번 개편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뉘며, 이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유지됐던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 체제를 약 18년 만에 복원하는 것이다. 검찰청은 7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수사권은 행정안전부 소속의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소권은 법무부 소속의 공소청으로 완전히 분리·이관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돼 감독 기능만 담당하고, 금융 정책은 재정경제부로 넘어가며,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별도 기구로 신설된다. 환경부는 산업부의 원전 및 일부 에너지 정책 기능을 흡수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폐지되며 방송·미디어·통신 기능을 총괄하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신설된다. 정부는 이를 두고 “기능 분산과 전문성 강화를 통한 정책 효율성 제고”라고 강조하지만, 야당과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보복” “헌법 질서 위반” 등 거센 반발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개편이 행정 효율성과 정책 전문성을 강화하는 개혁으로 남을지, 아니면 정치적 충돌과 사회적 혼란을 불러오는 위험한 실험으로 기록될지는 앞으로의 실행 과정과 권력 충돌 속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18년 만에 분리되는 기획재정부, 예산·정책 기능 이원화
이번 조직개편안에서 핵심 중 하나는 기획재정부의 기능 분리다. 기존 기재부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뉜다. 재정경제부는 경제정책, 세제, 국고 등 경제 운용 기능을, 기획예산처는 예산편성과 재정기획, 중장기 국가전략 수립 기능을 전담하게 된다. 기획예산처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새롭게 설치되며, 장관은 국무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1998~2008) 유지되던 ‘이원 체계’를 약 18년 만에 복원한 구조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예산 기능과 경제정책 기능을 분리함으로써 기능별 전문성과 정책 독립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획예산처가 예산 권한을 독립적으로 행사함으로써 총액 통제 및 부처 간 재정 배분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특정 부처나 관료조직에 예산이 집중되는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 직속이 아닌 국무총리 소속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실과의 물리적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예산 편성의 중립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책 조율 기능의 약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하나의 부처가 예산과 정책을 통합적으로 조정하던 기재부 체제에 비해 두 기관으로 나뉘게 될 경우 정책 간 충돌이나 기능 중복,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논란이 되는 지점은 예산 편성권이 실질적으로 더 대통령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기획예산처가 총리실 산하로 편입되더라도 대통령의 의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다. 정덕구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기재부는 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구조였지만, 총리 산하 기획예산처가 대통령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기재부 권한 집중이 지나치다”며 개편 의지를 보여왔고, 이번 개편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다. 한편, 금융정책 기능 역시 일부 재정경제부로 이관된다. 기존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과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재정경제부로 편입되며, 금융위원회는 감독 기능만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된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위원회 산하에는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가 새로 설치될 예정이다 . 이는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해 위기 대응력을 강화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전담하는 기구를 신설함으로써 제도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 분리는 권한 집중을 해소하고 기능별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개편이라는 점에서 명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정책 조율력 약화, 대통령실 권한 강화 가능성, 과거 혼선 재현 우려라는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향후 국회 심의와 법률 개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쟁점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74년 만에 사라지는 검찰청, 수사·기소 분리의 새 체제 출범
정부가 9월 7일 발표한 조직개편안 가운데 큰 변화 중 다른 하나는 검찰청의 공식 폐지다. 1949년 검찰청법 제정으로 설립된 이후 74년간 유지돼온 검찰청은 한국 형사사법체계의 핵심 기관으로 자리해왔으나 이번 개편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검찰청이 맡아온 수사와 기소 기능은 각각 다른 기관으로 분리되어 이관된다. 수사 기능은 행정안전부 소속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전담하며 기소와 공소 유지 기능은 법무부 산하 ‘공소청’이 수행한다. 이는 검찰이 독점적으로 행사해온 권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조치로, 정부는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6년 9월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여당 측은 수사와 기소가 분리됨으로써 권한 남용의 여지를 줄이고 각 기능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러한 맥락이 일정 부분 반영되었다. 한국갤럽이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실시한 조사 결과, 검찰 개편안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51%, 반대는 37%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다른 헌법기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는 사실이다. 2025년 상반기 조사에서 검찰 신뢰도는 줄곧 20%대에 머물렀으며 같은 시기 헌법재판소(61%), 중앙선관위(51%), 경찰(47%), 법원(46%) 등 주요 기관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정부는 이 수치가 검찰 권한 구조 개편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그러나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문화일보 칼럼에 따르면,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는 헌법은 검찰이라는 기관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검사의 영장청구권과 검찰총장 임명을 규정하고 있다며, 검찰청 폐지가 헌법 우위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검찰은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영장제도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등장한 기관이며, 정치권력이 자의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사법의 한 축으로 국민의 권익을 보호해왔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대립은 더욱 첨예하다. 여당은 검찰 권한 분산을 통한 민주적 견제 장치 마련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다. 특히,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축소하거나 폐지하여 수사권 유지 경로를 차단하고, 새로 공소청, 국가수사위원회 등을 설치하여 권한을 나누고 감시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당은 지금 이 시점에서 개혁을 밀어붙이지 않으면 기존의 권력 구조가 다시 고착화할 우려가 크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야당 국민의힘은 이번 개편안을 두고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박탈하는 것은 권력형 비리를 차단하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비판했다. 또 “검찰청을 없애고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권한을 분산하면 오히려 범죄 대응력이 약화되고 피해자 보호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결국, 검찰청 폐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는 형사사법 제도의 전면적 전환을 의미한다. 제도가 계획대로 시행될 경우 수사·기소 분리는 제도적으로 정착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헌법적 논란, 행정적 혼란, 정치적 갈등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조직개편안은 명분과 취지 면에서는 권한 분산과 전문성 강화라는 목표를 뚜렷하게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실행 단계에서는 법적 충돌·정치적 갈등·행정적 혼란이라는 삼중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기재부 분리의 경우 국회 심의 과정에서 권한 배분의 정당성과 효율성이 본격적으로 검증될 것이고, 검찰청 폐지는 헌법재판소 판단과 정치권 대립 속에서 그 정당성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금융·환경·방송통신 개편도 이해관계자들의 반발과 제도적 조율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결국 이번 개편이 국민의 신뢰 회복과 행정 효율성 제고라는 성과로 귀결될지, 아니면 정치적 의도와 권력 재편 논란 속에서 새로운 갈등만 불러올지는 앞으로의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조직개편이 진정한 개혁으로 남으려면 제도의 설계와 명분을 넘어 실제 운영 과정에서 얼마나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신뢰 확보 없이 단순한 권력 구조 재편으로만 인식된다면, 이번 개편은 “혁신”이 아니라 “혼란”으로 기록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답은 거대한 구조 개편이 그 이후의 실질적 변화와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이다.
- 자료조사: 김효유, 조현채, 홍준오
- 기사작성: 최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