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방영 시작과 동시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언어의 예술로 자리매김했다. 1950~80년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한 문학소녀와 군소리 없이 가장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관식의 삶을 따라 십여 년에 걸친 두 인물의 성장과 희생, 사랑을 그린다.
이 드라마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울림을 남긴 데에는 바로 장면 곳곳에 배치된 ‘시적 언어’가 있었다. 이 언어는 실제 주연 배우들의 열연, 섬세한 연출과 더불어 작품을 견인한 결정적 성공 요인이자, 대중과 비평계 모두에 깊은 감정의 파동을 일으켰다.
한 줄의 울림, 순간의 공감
방영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주요 장면 클립에는 대사가 시 같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아빠의 겨울에 나는 녹음이 되었다. 그들의 푸름을 다 먹고 내가 나무가 되었다.”라는 내레이션은 만 천 개가 넘는 공감이 기록됐다. 시청자들은 이 말을 통해 가족의 희생과 세대 간의 순환을, 단 한 줄의 시적 언어로 단번에 체험했다. 배우 아이유, 박보검, 박해준, 문소리, 엄혜란이 구현한 인물들의 심리와 내면은 평범한 설명형 대사가 아닌 은유와 상징, 반복과 역설을 통해 더욱 잔잔하고 강한 감동을 전했다.
평론가들은 이 드라마가 문학적 체험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제주 지역의 토속적인 방언과 시적 문장이 어우러져 드라마는 단순 영상물에 그치지 않고 언어의 예술로 확장을 이뤘다는 것이다. 국내외 평점 역시 높은 수치(IMDb 기준 9.1)에 근접하며 압도적인 긍정적 평을 받았다.
시로 감정을 입힌 대사
<폭싹 속았수다>가 내건 시적 언어는 수사적 장치가 아니다. 시의 언어는 객관적 정보 전달이 아닌, 화자의 감정과 경험을 주관적으로 담아낸다. 문학평론가 이경수는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 고도의 예술작품이라 볼 수 있으며, 모호성과 다의성, 은유와 운율이 특징이라 말한 바 있다. 시적 언어가 일상적 대사와 구분되는 특징은,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해석과 감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다. 시적 언어는 화면 속 사건과 인물의 삶을 압축하며, 관객 개개인의 경험을 거쳐 다시 현실의 문제와 감정으로 환기된다. 예컨대, “세상 제일 센 바람은 사람 가슴 한 뼘 안에서 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에는 장사 없었다”는 대사는 자연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 고통과 상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또, “엄마를 찌르면 내 가슴에도 똑같은 가시가 와서 박혔다”는 내레이션은 가족의 상처와 공감을 직설적이면서도 시적으로 묘사해 관객에게 연대와 감정적 동일시를 불러일으켰다. 즉, 이러한 대사와 내레이션이 관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여운과 공감, 자기 성찰로 확장된다.
짧은 대사에 담긴 세대 간 마음
시청자의 마음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미적 성취로, 가족과 세대, 삶의 본질을 시적 언어로 요약했다는 점에 있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는 대사는 세대 간 단절과 오해의 구조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부모와 자식이 각각 품은 마음의 평행선을 짧은 한 줄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의 내면에 스며드는 성찰을 유도한다. “개천에서 진짜 용이 나려면 개천은 죽어나야 되는 거니까”라는 말 역시 세대 간 희생과 성취의 현실을 냉엄하게 비틀고 개인의 성공 뒤에 자리한 가족의 헌신을 각인시켰다.
삶을 통찰하게 만드는 언어, “살면 살아져.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와 같은 대사도 있었다. 이는 상실과 치유, 그리고 버티는 삶의 의지를 담담하게 은유하며 시청자에게 위로 이상의 울림을 남겼다. 상처, 이별, 희생, 책임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시로 승화했고, 시청자는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비추어 해석하면서 더 큰 의미를 발견했다.
창작 태도와 시청자의 몰입
작가 임상춘은 인터뷰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드라마로 만들어 제공하는 전달자나 통역사이고 싶다. 대사로 써야한다는 생각보다 그 마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교훈이나 비판 없이 인물의 감정을 시적으로 드러내고, 삶의 허망함과 희망, 슬픔과 기쁨을 개인의 해석으로 풀어내도록 남겨둔다는 것이다. 이러한 창작 철학이 드라마 대사가 독자적이고 함축적인 울림을 남길 수 있는 이유다.
평론가 정덕현은 제주 해녀의 삶 속 거친 방언과 시적 대사가 토속성과 함께 문학적 깊이를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또한, 드라마 내 애순이 직접 쓴 시도 작품의 문학적 성격을 강화했다. “풍에 울던 바람여… 변하느니 달이요, 마음이야 늙겠는가”와 같은 구절은 인생의 가을을 맞은 인물이 봄날의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내면을 은유한다.
드라마가 예술이 되는 순간
<폭싹 속았수다>는 이야기를 본다는 경험을 언어를 체험하는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극적 전달과 동시에 관객이 스스로 해석할 틈을 남기는 시적 언어의 힘은 설명이 아니라 감동을 남긴다. 이는 곧 드라마라는 매체가 지닌 공감과 위로의 힘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으며, “언어가 그저 대사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시처럼 읽히고 가슴속에 각인되는 순간, 드라마는 예술로 승화된다”는 평론이 현실이 되었다.
해당 드라마는 방송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될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작품의 대사와 내레이션, 시청자들의 감동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삶의 진실을 드러내기에 충분했고, 언어의 파동은 관객 각자의 삶을 반추하게 했다. 제주라는 공간, 인물의 고통과 성장, 세대와 가족의 구도,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의 굴레 속에서, 시와 이야기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오래도록 기억될 제주의 이야기
4주 차에 이르러, 우리가 발견한 것은 서사나 영상미 이상의 것이었다. 함축적인 언어의 힘과 시적인 대사는 우리 일상과 마음을 움직이고, 가족과 세대, 치유와 희생을 다시 묻도록 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언어는 살아남아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오래도록 감동을 남긴다. <폭싹 속았수다>가 증명한 시적 언어의 파급력과 미디어적 가능성, 그리고 대사의 예술적 승화는 2025년 한 해를 넘어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 기사 작성 및 수정: 조현채
- 기타 의견: 김효유, 최지안, 홍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