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 세대의 젠더 갈등 인식이 온라인 논쟁을 넘어 방송과 웹콘텐츠를 통해 일상 문화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특히 2030세대가 주로 소비하는 웹 예능과 콘텐츠는 젠더 이슈를 더욱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논쟁을 격화시키며, 때로는 이해와 포용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중에 주목받았던 예능 프로그램인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와 <검은 양 게임>은 바로 이런 젠더 갈등 인식 콘텐츠의 양면성을 집약한 사례이다. 두 콘텐츠는 젠더 갈등과 다양성 이슈를 전면에 배치해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그와 함께 발생한 사회적 파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갈등을 드러내는 용기, 소통의 가능성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서로 다른 젠더 정체성 및 사회·경제적 사상을 가진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감한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의 예능이다. 제작진의 기획 의도에 대해 “사회 속 숨겨진 편견과 오해를 드러내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이해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프로그램 속 참가자들은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권리, 남녀 간 불평등 경험 등 평소 쉽게 꺼내지 못한 화제를 직설적으로 주고받는다. 시청자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불편함과 공감을 동시에 느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3년 발표한 「젠더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30대의 63.2%가 ‘상대 성별 집단에 대한 불신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참가자들이 관련 이슈에 대한 자신만의 논리를 피력하는 모습이 이러한 사회적 불신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셈이다.
하지만 서로의 신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 장면만큼 주목할 부분은, 일부 회차 후반에 등장한 화해와 이해의 순간이다. 토론 속에서 격한 언쟁을 벌이던 참가자들이 서로의 배경과 경험을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 다르지만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시청자에게도 결국 사회의 불평등에 관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차별 없는 세계를 그리는 웹콘텐츠의 실험
또 다른 사례인 <검은 양 게임>은 게임 버라이어티 형식을 띠며, 트렌스젠더와 LGBT 캐릭터를 중심에 배치했다. 해당 프로그램에선 젠더 소수자를 특별한 인물이 아닌 서사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주체로서 등장시킨다.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협력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은 갈등보다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소수자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우리도 평범한 캐릭터로 표현됐다’고 반응했다.
더해, 게임 속 협력 미션이 갈등을 해소해야만 달성되는 구조로 설계되었기에, 미션 수행은 갈등과 차이를 극복 가능한 것으로 그리는 하나의 장치로서 작용했다.
미디어의 의도가 항상 그대로 전해지진 않는다
문제는 이들 콘텐츠의 기획 의도와 방향성이 가지고 있는 긍정성이 시청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격렬한 토론 장면이나 <검은 양 게임> 속 특정 대사와 장면은 때때로 잘린 클립과 짤방 형태로 유통되면서, 원래의 의미와 맥락이 변질됐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및 KoreaScience가 발표한 「인터넷 혐오표현 대응방안에 관한 탐색적 연구」에선 정보가 자극적으로 단편화되어 유포될수록 혐오와 갈등이 빠르게 확산된다는 전문가 인터뷰 결과를 소개했다. 실제로, 방송 직후 참가자 개인에 대한 신상 공개 시도, 인신공격성 댓글이 이어지기도 했다.
제작진이 다양성 존중을 의도함에도 일부 시청자는 이를 의도적인 젠더 갈등 조장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가 갈등 완화 역할보다 갈등 증폭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미디어와 청년 세대, 앞으로의 과제
젠더 갈등을 주제로한 예능과 웹콘텐츠는, 젠더에 관한 메시지가 사회 구성원 각각의 가치관, 경험, 문화적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반발, 공감을 낳기 때문에 사회적 논쟁을 촉발하기에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핵심은 제작진이 일부 출연자들이 방송 이후 받게 되는 인신공격성 댓글과 신상 노출 등의 2차 피해를 겪는 그 후폭풍까지 책임지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콘텐츠가 지닌 파급력을 감안할 때, 갈등을 부각하기 위한 자극이 아닌 갈등을 다루되 해결로 나아가는 서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 세대 역시 콘텐츠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단순 자극적 장면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각 프로그램이 전달하려는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비판적 시청 습관은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와 <검은 양 게임>이 청년 세대의 젠더 갈등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분명 이들은 공론화와 포용성 확대라는 가능성을 열었지만, 동시에 갈등의 확산이라는 위험도 안고 있었다. 이 두 얼굴을 모두 직시하고 미디어와 시청자가 함께 건강한 토론 문화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갈등을 줄이고 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글 – 조현채
- 자료조사 – 한지은, 조현채, 정여진
- 팩트체커 – 한지은, 조현채, 정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