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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4일 (월요일)
오피니언 저출산 시대, 낳고 싶은 사람이 낳을 수 있도록

[오윤수 칼럼] 저출산 시대, 낳고 싶은 사람이 낳을 수 있도록

“돈을 주면 아이를 낳을 거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합니다. 돈을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중략) 출산장려금은 폐지하고, 아동복지 예산은 늘리겠습니다.”

– 2021. 8. 19.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 하태경 공약 발표 기자회견 중

‘저출산’과 ‘고령화’. 이 두 단어는 지금 한국이 처한 종말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 교실에 모인 아이들의 숫자는 열댓 명으로 줄고, 지하철 좌석의 절반이 노약자석으로 바뀌는 세상이 곧 도래한다. 대한민국이 두 세기 안에 소멸할 거라는 끔찍한 이야기, 합계출산율이 2년 연속 전 세계 꼴찌라는 뉴스, 가임기 여성 한 명당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생아 수가 1명이 채 안 된다는 소리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가히 ‘저출산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시대에, 글의 맨 처음 나온 인용구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면, 괜찮다. 나도 그랬으니까. 온갖 자원을 저출산을 막는데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출산 장려 정책을 폐지하자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당신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지 말고 한번 들어봐라.

출산장려금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의 믿음을 근거로 한다. ‘돈을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다.’라는 믿음과, ‘아이를 낳는 것이 더 도덕적이다.’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 이 두 믿음은 타당할까.

우선, 돈을 주면 아이를 낳을 거라는 발상부터 생각해보자. 현재 대한민국은 전국의 수많은 기초자치단체의 재량으로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 25개 기초자치단체는 첫째에 10만 원에서 50만 원, 둘째에 20만 원에서 100만 원 등의 출산장려금을 각자 지급 중이다. 인구가 적은 지방의 경우 훨씬 더 큰 금액의 출산장려금을 편성한다. 충남 서천군의 경우 첫째에 500만 원, 둘째에 1000만 원 정도를 지급하며, 경남 의령군의 경우 셋째 출산에 1억을 탕감해주겠다는 정책도 등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 서울의 2021년 합계출산율은 0. 67명으로, 대한민국 전역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경남의 거의 모든 기초지자체의 합계출산율은 4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올해, 광주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광역자치단체는 합계출산율이 감소했다. 1990년대에는 1.5명대, 2010년대 중반대까지만 해도 1명대를 유지했던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2020년 통계청 기준 0. 84명, 세계 꼴찌다. 지자체 간의 공격적인 출산장려금 경쟁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출산장려금이 본질적 해결책이라는 발상은 굉장히 이상하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여성이나 부부는 애초부터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아실현을 지향하고, 비혼주의나 비출산 주의를 지향하는 분들, 임신 및 출산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계신 분들은 출산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다. 그런 분들께 그깟 돈 몇 푼 쥐여 준다고 아이를 낳을 생각이 생길 리 없다.

백번 양보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마음이 생긴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도, 출산장려금은 절대 답이 되지 않는다. 2012년에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에서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학 등록금을 포함하여 2012년 기준 3억 896만 원에 달한다. 이것이 9년 전 기록임을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부담은 더욱 상승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 한 명당 수십에서 수천 정도로 지급되는 출산장려금만을 보고 출산을 할 거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순진하다.

원래 자녀를 낳을 생각이 있는 경우에는 조금 상황이 다르지만, 이마저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조세재정연구원에서 2019년에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출산장려금 지급 후 이미 결혼한 부부에 대한 출산율이 조금 상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상승 폭은 지원금 100만 원, 배우자가 있는 여성 1000명당 42~60명에 불과하다. 낳고 싶은데 낳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문제는 단순히 돈 좀 뿌려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경력단절 문제, 비정상적으로 높은 보육비와 교육비 문제, 그리고 장기적으로 본다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즉 기초자치단체에서 뿌리고 있는 돈들을 공공어린이집과 돌봄교실, 공공 베이비시터 등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근본적인 처방이 될 터이다.

그럼 다음 믿음인 아이를 낳는 것이 더 도덕적이라는 통념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우리는 흔히 출산하는 것이 국가에 봉사하는 일이며, 출산하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거꾸로 뒤집어 보면 결혼을 했는데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애국자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국가뿐만 아니다. 가정 내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비일비재하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팽배한 집안 내 어른들의 결혼 독촉과 출산 독촉은 명절에 친척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오죽하면 명절 잔소리를 주제로 유튜브 콘텐츠가 쏟아져 나올 정도겠는가.

하지만, 그게 더 도덕적이라는 발상, 그렇게 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발상은 사실 굉장히 위험하다. 아이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낳는 것이지, 사회적으로 더 도덕적이기 때문에 낳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발상은 국가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는 것이 마치 도덕적인 일인 것처럼 포장한다. 이 속에서 죄 없는 개인들은 출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회적인 눈치를 봐야 한다. 출산한 사람들에게 도덕적 우월성이 부여될수록, 출산하지 않은 사람들이 설 곳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압박이 출산율 증가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출산에 대한 뒤틀린 죄책감과 혐오감, 부정적 감정만 자라나게 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기쁨과 즐거움, 소중함을 꿈꾸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 아이를 낳는 것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무감에 의한 것일 때, 그 일이 행복할지 아닐지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출산장려금은 이런 뒤틀린 도덕관에 당위를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자, 이제 우리는 출산 장려 정책의 기저를 이루는 두 믿음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출산 장려 정책은 저출산을 해결할 수도 없고, 딱히 도덕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는 이 실효도 없고 가치도 없는 정책에 막대한 국민 세금을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도록 할 수 있다는 생각, 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전체주의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든 사람’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난임 부부에게 시험관 시술을 할 기회를 주고, 산부인과에 관련된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 경력단절 여성에겐 최소한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공공 베이비시터를 공급하고, 직업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급증하고 있는 맞벌이 부부들이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공공어린이집과 돌봄교실의 인프라 및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연예인 사유리 씨와 같은 혼외출산도 허용해야 한다. 직접적인 저출산 정책은 아니지만, 더 장기적으로는 집값을 떨어뜨리고 사교육비를 낮출 대안을 고민해야만 한다.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 성적이 떨어졌다면, 그때는 공부법을 바꿔야 한다. 양이 아니라 질으로 승부해야 하고, 무작정 달리기보다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구정책 자체가 잘못 설계되었음을 인정하고 방향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이 낳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방식, 돈 몇 푼 뿌리면서 출산율이 늘어나리라 기대하는 방식은 실패가 증명되었다. 이제는 아이 낳고 싶은 사람이 마음껏 아이 키울 수 있는 나라, 태어나는 아이 한 명 한 명이 더 많은 것들을 향유할 수 있는 나라로 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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