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공개 2주 만에 6백만 시청 기록 돌파와 함께 한 달 후에는 글로벌 TOP10 시리즈 부문 1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흥행을 자랑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1950~1980년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시인을 꿈꾸는 문학소녀 ‘애순’과 어떤 궂은일이라도 군소리 없이 해내는 ‘관식’의 10대 시절부터 황혼기까지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꾸며 냈다.
<폭싹 속았수다>의 성공은 관식 역을 맡은 배우 ‘박보검’, ‘박해준’과 반항기 있는 소녀 애순이 단단한 어른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설득력을 불어넣은 배우 ‘아이유’, ‘문소리’의 열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연 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 주목 받은 또 다른 성공 요인에는 사랑, 정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더욱 극대화한 연출도 존재했다. 단순한 신파극으로 흐를 위험이 있는 소재를 다뤘음에도 많은 대중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폭싹 속았수다>만의 ‘시적 언어’ 표현법에 있다. “엄마를 찌르면 내 가슴에도 똑같은 가시가 와서 박혔다.”, “아빠의 겨울에 나는 녹음이 되었다.”, “그들의 푸름을 다 먹고 내가 나무가 되었다.”와 같은 시적인 대사들이 드라마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시청자들의 가슴에 깊은 감정을 심어 언제고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시는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 장르를 뜻한다. 시적 언어는 시의 언어라고 일컫는데, 직설적이고 완결적인 일상의 언어와 달리, 시의 특징을 가져 함축적이고 다의를 가진, 혹은 음악성을 가진 언어를 말한다. 일상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객관적인 기능을 한다면, 시적 언어는 화자의 ‘감정’과 ‘경험’을 중심으로 주관적인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시적 언어는 시에서 가장 잘 나타나지만, 최근 사이 드라마나 소설 등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시청자와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추세이다.
시적 언어는 함축적이고 비유적이다. 그렇기에 시적 언어를 마주한 시청자는 평소 듣는 완전한 일상어와 달리 정보의 결핍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수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일상화 되고, 빠른 형태로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선 환영 받지 못하는 언어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핍에서 시적 언어는 빛을 발한다. ‘화자는 이런 짧은 문장으로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거지?’, ‘화자가 말한 단어는 어떤 걸 빗댄 건가?’와 같은 청자의 의문과 각자의 방식으로 시적 언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시청자의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또한, 시적 언어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세상에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너무 슬프다.”, “너무 아프다.”와 “너무 슬픈 슬픔이어서 눈물을 삼켰다.”, “너무 아픈 아픔이어서 추억을 삼켰다.”(<슬픔>-공석진) 같은 시적 언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두 개의 언어 모두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는 후자에 더 몰입하게 된다. 시 속 화자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가 겪은 일이 눈물을 삼킬 정도의 막대한 슬픔에 합당한 객관적인 사건인지도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나 보고 듣는 이들에게 너무나도 슬퍼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던 아픈 기억이 존재한다면, 시적 언어는 그들에게 슬픔에 대한 당위성을 묻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감정을 보듬어 주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다.
<폭싹 속았수다> 또한 이러한 시적 언어의 기능에 집중했다. 애순과 관식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묵묵히 전달하는 것에 시적인 내레이션이 더해져 시청자 한명 한명을 애순, 관식과 동일시 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지고, 그들의 슬픔엔 누구보다 분노하게 된 것이다. 시적 언어가 TV 속 인물들과 극 밖의 시청자를 이어준 징검다리가 된 셈이다.
본 기사에서는 <폭싹 속았수다> 속 시적 언어가 사용된 주요 장면과 대사를 분석하고 ‘감정과 공감의 변화’를 중심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며, 현대 사회에서 ‘시적 언어’가 어떤 파급력을 가지는지, 미디어 매체 속 ‘시적 언어’는 앞으로 어떤 기대효과를 불러올 것인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글, 최지안, 조현채
자료조사, 김효유
팩트체커, 홍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