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경기를 본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20대는 스포츠를 ‘문화 콘텐츠’로 소비하고 있다. 단순히 누가 이기고 지는가를 넘어, 스포츠는 요즘 청년들에게 ‘패션, 커뮤니티, 감정의 해소, 그리고 디지털 놀이’까지 아우르는 종합 경험이다.
야구장, 경기장이 아닌 축제의 현장
2024년 한국 프로야구는 누적 관중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의 이면에는 20대 청년과 여성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다. 과거 ‘아버지의 스포츠’로 여겨졌던 야구는 이제 ‘푸드트럭, 포토존, 테마 이벤트, 굿즈 마켓’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다. SNS에는 응원석 분위기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선수의 플레이가 짧은 클립으로 재가공되어 밈(meme)이 된다. 스포츠는 이제 보는 것을 넘어 즐기는 것으로 진화했다.
스포츠는 모두의 것, 성별 경계가 무너진다
2024년, 프로야구 티켓 구매자 중 54.4%가 여성이라는 통계는 주목할 만하다.
과거 남성 중심으로 여겨졌던 축구, 농구, 배구 등의 영역에서도 여성 팬들의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여성 팬이 늘었다’는 수치를 넘어,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e스포츠, 청년들이 만든 새로운 종목
스포츠의 정의가 확장되고 있다.
e스포츠는 디지털에 익숙한 20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스포츠 세계다. 좋아하는 게임의 경기 장면을 보며 환호하고, 선수 굿즈를 사고, 트위치·유튜브를 통해 소통하는 모습은 전통 스포츠 팬덤과 다를 바 없다. 이제 ‘경기력’뿐 아니라, 팬과의 교감, 콘텐츠의 재미가 스포츠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스포츠는 지금, 20대에게 하나의 ‘경험 플랫폼’이다.
앞서 보인 스포츠계의 흐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청년들은 다른 세대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스포츠를 향유하고 있다. 응원가를 따라 부르고, 굿즈를 모으며, 자신만의 ‘최애 선수’를 응원하는 방식은 아이돌 팬덤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야구, 축구, 농구 등 인기 스포츠 팀들은 선수 중심의 마케팅을 펼치며 20대 팬 확보에 나서고 있다. 경기 자체보다 선수 서사와 응원 커뮤니티에 끌리는 20대의 특성을 반영한 전략이다.
디지털 환경도 스포츠의 문화적 소비를 가속화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이나 경기장 브이로그, 선수 인터뷰 콘텐츠는 마치 예능처럼 소비된다. 스포츠는 더 이상 ‘TV 앞에서 90분을 꼬박 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순간만, 취향대로 골라보고, 그에 반응하고, 공유한다. 경기의 맥락보다 감정적 순간에 집중하는 소비 방식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경기장 안팎의 풍경도 바꿔 놓았다. 야구장의 ‘응원석’은 하나의 문화 공간이 되었고, 축구장은 일종의 페스티벌 공간처럼 꾸며진다. 러닝크루, 클라이밍 동호회처럼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며 ‘라이프스타일’로 끌어들이는 흐름도 강해졌다. 즉, 스포츠는 요즘 20대에게 운동이자 콘텐츠이며, 동시에 일상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20대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24살 여성 A씨는 원래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이였다. “경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응원하고 열광하는 그 시간이 정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라고 회상했다. 그 기억 덕분에, 지인이 야구장을 함께 가자고 했을 때도 큰 망설임 없이 수락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정 구단의 팬은 아니었지만, 막상 경기장을 찾고 보니 축제 같은 분위기에 어느새 한 팀을 응원하고 경기를 즐기게 되었다며 이후에도 야구 직관을 찾게 된다고 했다.
“열정적인 응원, 축제 같은 분위기, 다채로운 먹거리가 어우러진 현장에 매료되면서, 자연스레 이후에도 야구장을 찾게 되었죠.”
A씨의 사례처럼, 요즘 청년들에게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관람을 넘어, 일상 속 여가이자 문화 콘텐츠로 스며들고 있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즐길 거리와 소통의 경험이 새로운 스포츠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또 다른 ‘취향’으로 자리 잡게 만든다.
스포츠 문화의 시대
청년들에게 스포츠는 더 이상 경기장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스포츠는 경기장에서 시작되지만, 문화 속에서 완성된다. 지하철 안에서도, 유튜브 속에서도, 동네 체육관과 브런치 카페에서도, 청년들은 스포츠를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해석하고, 재창조하고 있다. 경기 결과만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다.
중요한 건, 그 경기를 둘러싼 즐길 거리와 느낄 거리이다.